바이올린 소나타 21번 K. 304/300c 연주가 시작되자 세종시 비오케이 아트 센터를 가득 메운 방청객은 숨을 죽였다.
모차르트의 다른 소나타는 밝은 곡이 많은데, 이 곡은 처음부터 그렇지 않아서였는지?
사회자 김현 박사(한국화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이 곡은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직후에 쓴 곡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 그 숭고한 이름!.
내게도 어머니가 계셨다.
소천하신 지 4년여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살아 계신 나의 어머니를 1700년대의 모차르트가 나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속삭이고 있었다.
하물며 그 절절한 아픔과 애절한 사랑을 읊조리는데 그는 음을 아끼며 승화시키고 있었다.
곡은 이상화된 어머니를 그리며 끝을 향하고 있었다.
곡을 듣는 내내 어머니가 그리웠다. 이제는 사진 한 장으로 남으신 어머니가 몹시 그리웠다.
나머지 곡들은 발표 직전에 폐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러워 마라
비 내려 흩어진다 애태우지 마라
누운 꽃잎 바라보며
두 손 모으지도 마라
여린 가지 잡아 흔들며
터진 주름살 파고드는 칼바람에도
마침내 몸 끝으로 밀어낸 또 다른 세상
잠시 빛냈던 것으로 족하나니
달 그림자 좇는 반딧불이
내 작은 뜨락에 봄의 조각으로
찾아온 것으로 족하나니
지는 잎 받으려고 손 모으지 마라
꽃잎 벚꽃 잎으로 가득한
사진 한 장으로 족하나니
풀
풀풀 웃을 수 있나니
<사진 한 장> 전문 이종대 시집 “꽃에게 전화를 걸다” 시산맥
두 번째 연주는 바이올린 소나타 No 3 in D minor, Op.108 이었다. 이 곡은 J. Brahms(1833-1897)가 작곡하였다. 현재 전하고 있는 브람스의 소나타 3곡 중 한 곡이다. 브람스는 8편의 소나타를 작곡하였는데 그 중 3곡만 전해지는 것은 자기검증에 철저했던 그가 발표 직전 모두 폐기해 버려서였다고 한다.
아마도 모차르트 역시 도공 자신이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든 도자기라 할지라도 예술적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모두 부숴버리는 예술혼과 닿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 도자기뿐이랴 모든 예술은 그렇게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세상에 빛을 보기 시작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쓰여진 바이올린 소나타 No 3는 만년에 접어든 브람스의 음악적 자신감과 극적인 활력이 넘치는 작품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주현 씨는 충북도립교향악단 상임단원으로 6년 반 동안 재직하고도, 도미하여 전문연주자 과정을 거치고도, 세계적인 명교수들에게 사사받았다. 미국 텍사스주 시립 교향악단에서 정단원으로 재직하며 연간 30여회의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를 공연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브람스의 음악적 자신감은 오랫동안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혼을 불살라 온 김주현 바이올리니스트의 자신감과도 통하는 것은 아닐까?
세 번째 연주곡은 바이올린과 첼로 협연을 위해 작곡된 Passacaglia였다. 이 곡은 본래 Handel(1685-1759)에 의해 작곡되었는데 J. Halvorsen(1864-1935)에 편곡된 작품이다.
파사칼리아(Passacaglia)는 ‘걷는다’는 뜻의 스페인어 passa와 ‘거리’라는 뜻의 calle가 결합된 것으로 하나의 선율을 먼저 저성부에서 몇 번이고 반복하여 차츰 다른 성부에서도 차례로 변주해 가는 형식을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Handel에 의해 작곡되었던 것이 Halvorsen에 의해 편곡된 작품이다. 남성적이고 마쵸적인 느낌을 주는 파사칼리아를 연주하는 동안 관중들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결합을 들으며 소리가 주는 마력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네번째로 연주된 곡은 Piano Trio in G minor,Op.15 였다. 이 곡은 B. Smetana가 작곡한 곡으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김주현 바이올리니스트는 작품을 연주하며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픔과 그리움 그리고 고통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피아노와 첼로와 협연하며, 관중을 가족을 잃은 끝없는 아픔과 어릴 적 딸과의 교감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몰아넣었다.
필자 역시 5남매 중 아들로서는 첫째로 태어나, 위로 누님과 아래로 막내였던 남동생을 먼저 떠나 보냈다.
그때 형제자매를 잃은 심정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그대로 남아있다.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는 그래도 그 엄청난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시며, 살아남은 자식들에게는 두 번 다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과연 극복되는 것일까?
때로는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다가도, 자식이 살아서 재롱을 피우던 시절의 추억에 젖기도 하고, 다시 또 깊이 모를 수렁에 빠지기를 반복하며 끝없이 이어졌다. 아픔과 고통, 그리움, 괴로움, 서러움, 사랑으로... 사랑으로....
가엾다 하지 마라
너를 향한 박수에 푸르게 견딜 수 있었느니
너의 향기엔 나의 내음새도 섞여 있었느니
이리저리 온 몸이 힘겹게 흔들리는 날
비바람 거친 손아귀에 허리가 휘청이던 순간에도
온전한 네 모습 바라보는 것
들판을 향해 환히 웃는 네 모습 올려다 보는 것
그것이 나의 오롯한 바람이었느니
미안해하지 마라
기쁨
소망
모든 행복이었느니
너는
<꽃받침> 전문 이종대 시집 “꽃에게 전화를 걸다” 시산맥
연주가 끝나고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오고, 앵콜곡이 이어졌다. ‘ 내 영혼 바람되어’ 였다. 세월호 사건으로 숨져간 어린 영혼을 위한 곡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필자에게 그 연주곡은 먼저 떠난 자식이 부모를 위해 부르는 천사의 연주였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다시 만나자고!
‘엄마, 아빠, 다시 만날 때까지 이겨내야 해’ 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손녀와 함께 오면서, 손녀는 말한다. '소름돋는 연주였다'고....
'이종대 문화산책 > 수필 과 평론과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밀밭에 울려퍼지는 하모니... 다다예술학교 (5) | 2023.10.17 |
---|---|
국립한글박물관을 다녀와서 (0) | 2023.09.18 |
- 서정의 화원 : 이 종대 시인의 시심 뜯어보기 NO.1 - (4) | 2023.09.01 |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0) | 2023.08.22 |